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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키야 지역

제목 에드리네 (EDIRNE)
작성자 윤여행사
작성일 17-03-07 01:47

트라키아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시는 과거 한 때 명성을 날렸던 곳이다.

 

1362년 불사(bursa)에서 오스만 투르크가 에디르네로 수도를 옮겨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기까지 약 90년 동안 수도로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콘스탄티노플 정복자인 술탄 메흐멧이 태어났다. (1432년 3월 29일) 1451년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그는 즉시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1453년 함락에 성공한 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509년에 에디르네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모든 건물들이 대파되었다. 그리고 수도가 옮겨 간 후라 도시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1569년에 술탄 셀림 2세는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사원 Selimiye Camii (셀리미에 자미)를 그 유명한 미마르 시난에게 맡겨 건축하도록 했다. 술탄 셀림 2세는 사이프러스를 정복하기위해 떠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내가 이 전쟁에서 이기면 큰 사원을 지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전쟁에 이기고 돌아와서는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잊어 버렸다.

 

어느 날 꿈속에서 모하메드가 나타나 왜 약속을 잊었는가 하고 꾸짖으며 환상 속에서 에디르네를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술탄 셀림 2세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셀리미예 사원을 이곳에 건축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에디르네는 한 때 불가리아에 영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1913년 7월 21일 무스타파 캐말(아타투르크)이 전투로 다시 이 땅을 되찾았다. 지금은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 Selimiye Camii (셀리미예 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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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년부터 1575년까지 6년에 걸쳐서 건축 된 이 모스크는 술탄 셀림 2세가 헌납한 것이다. 많은 왕족과 귀족 그리고 일반 성도들이 주머니에 금을 모아 이 건축에 사용할 비용을 충당하였는데 이 주머니가 크고 작은 것을 합쳐서 27,760개나 되었다. 14,400명의 인부들과 기술자들이 미마르 시난의 지휘 하에 건축한 이 사원은 전체 높이가 43,28m이며 이 중 돔의 높이가 15,86m, 직경 31,50m에 이르고 있다. 사원 안에 8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999개의 창문을 만들고 60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다. 이 사원은 총 면적은 22,022 m2 이다. 4개의 미나래(첨탑)를 세웠으며 미나래의 높이는 70,89m이다. 사원 안에는 32개의 문이 있다.

 

건물 안의 세라믹은 전부 붓으로 그려 구운 이즈닉 세라믹으로, 창문에도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어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정원의 예배장소에도 돌을 손으로 깎아 만들어 배열하였다. 셀림 2세는 1566년 42세의 나이로 오스만 제국의 11대 황제(술탄)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8년 후 1574년에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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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잠시 언급할 것은 미마르 시난(건축가, MIMAR SINAN, 1489.4.15~1588.7.17)에 관한 이야기다.

 

오스만 투르크 역사에서 전후무후한 건축가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시난은 1490년 카이세리에서 태어나서 나이 23세에 이스탄불의 왕궁의 목공으로 불려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1517년부터 수많은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었다. 1537년 47세가 되었어도 고향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어느 날 Karabuk에서 전투가 벌어 졌는데 이곳에 있는 Purut강을 병사들이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다. 이 때 시난이 다리를 설계하여 13일 만에 다리를 놓고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장군은 그의 기술을 크게 인정하여 황제에게 알렸고 드디어 1538년에는 국가의 건축기술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특별한 소질은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이스탄불의 유명한 술레이마니예 사원(제10대 황제 Suleyman), 에디르네의 셀레미예 사원 등 80개의 사원, 50개의 목욕탕, 50개의 Mescid (작은 회교사원), 60개의 학교, 7개의 저수지, 12개의 다리, 20개의 황실 묘지 등 그가 98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명 건축물을 남긴 것이다. 에드리네에는 그의 건축물이 19개가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시난을 버금가는 건축가가 없을 정도로 시난은 터키의 자랑스러운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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